나는 어떻게 ‘약신(藥神)’이 되었나

수입 항암제에 대한 무관세 정책과, “더 많은 환자에게 자구책을 열어주고 재앙의 벼랑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했다”는 평가를 받은 루융 사건의 영향으로, 영화 ‘나는 약신이 아니다(Dying to Survive)’는 큰 화제를 모았다.
중년 남성 청융은 아버지가 반신불수이고 이혼까지 해 아버지 치료비와 아들 양육비를 감당할 수 없다. 인도산 제네릭 ‘글리니브’를 중개·판매하며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들을 돕는 동시에 자신의 생계도 조금 나아진다. 하지만 금지약을 취급·판매하는 일은 밀수와 위약 판매에 해당하며 적발되면 장기 복역이 따른다는 사실을 그는 안다. 오리지널 제약사 ‘노바’(노바티스를 암시, ‘글리니브’는 글리벡/이미티닙), 경찰, 위약상 장창린의 삼중 압박 속에 그는 결국 손을 뗀다. 그의 도움을 받던 류서우이, 시골 출신의 반항아 펑하오, 백혈병 딸을 둔 류스후이, 목사 류 등도 어쩔 수 없이 흩어진다. 1년 뒤, 장이 파는 제네릭도 노바의 정품도 살 수 없게 된 류서우이는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운명은 이미 작은 성공을 거둔 청융을 다시 인도산 ‘글리니브’ 중개로 끌어들인다. 오리지널사의 공세가 강화되자 경찰은 청융 일행을 체포한다. 징역 5년을 앞두고 법의 심판 앞에 선 청융은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는 자신의 양심이 떳떳하다고 믿는다.
생로병사는 삶의 자연스러운 순환이다. 그러나 누구도 병에 지고 싶진 않다. 모두가 살 권리가 있고, 살기 위해 싸울 권리가 있다. 백혈병 노인이 경찰 차오빈에게 말한다. “살고 싶소.” 세 글자가 모두의 마음을 대변한다.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운데 누가 살고 싶지 않겠는가. 영화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장면은 식사다. 류서우이와 펑하오는 도시락을 쉬지 않고 먹고, 청융은 길거리 음식을 혼자 먹고, 아버지는 환자식을 한 숟갈씩 삼킨다. 류의 집에서의 가족 식사, ‘약신 팀’의 훠궈까지. 먹는 일은 생존의 기반, 약은 생존의 핵심. 끼니를 거를 수 없고 치료도 멈출 수 없다.
현실의 파도는 작은 사람을 번번이 파도 꼭대기로 떠밀었다가 다시 나락으로 내던진다. 작은 알약 하나가 생명의 목줄을 조인다. 삶의 연약함을 탄식하면서도 기업의 책임이 무엇인지 되돌아봐야 한다. 맞다. 기업가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는다. 오리지널 제약사는 연구개발–임상–시험으로 이어지는 사슬에 막대한 위험을 진다. 합리적 이윤이 있어야 선순환 발전도, 더 큰 사회 문제 해결도 가능하다. 그러나 사회적 책임은 기업의 크기나 힘과 일치하지 않는다. 작은 공장주에 불과한 청융도 이윤 대부분을 백혈병 환자들을 위해 내놓을 수 있었다. 노바티스 같은 거대 제약사가 정말 병 한 병 3만 위안에 팔아야만 돌아갈까. 투유유의 아르테미시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특허를 내지 않은 데는 역사적 한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사회적 책임감이 있었다. 화학 구조와 합성법을 공개하고 베트남과 동남아 국가를 무상 지원했다. 머크도 강변실명증이 만연한 아프리카 지역에 이버멕틴을 무상 배포했다. 기업은 돈만 버는 곳이 아니다. 사회적 책무를 져야 한다.
한숨으로 끝낼 수 없다. 사회는 불완전하다. 개인의 분투가 운명의 손을 느슨하게 하고, 모두의 분투가 빈곤과 질병을 없앤다.
게시일: 2024년 7월 8일 · 수정일: 2025년 9월 11일